UNIT 2 - Period 2: 1607-1754
목차
주제 번호 | 주제 이름 | 학습 목표 | 주요 개념 및 내용 |
2.1 | 제2시기를 맥락화하기 | 1607년부터 1754년까지 북미 식민지화의 맥락을 설명하라. | - 초기 정착지 |
- 노동력의 원천 | |||
- 맥락 분석 및 주요 사건 | |||
2.2 | 북미에서의 유럽 식민화 | 1607년부터 1754년까지 다양한 유럽 식민지가 어떻게 그리고 왜 발전했는지 설명하라. |
- 스페인 식민지 |
- 프랑스 식민지 | |||
- 네덜란드 식민지 | |||
- 영국 식민지 | |||
2.3 | 영국 식민지의 지역들 | 환경적 및 기타 요인들이 영국 식민지의 발전과 확장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하라. | - 초기 영국 정착지 |
- 뉴잉글랜드의 발전 | |||
- 복원 식민지 | |||
- 초기 정치 제도 | |||
2.4 | 대서양 횡단 무역 | 대서양 횡단 무역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라. |
- 삼각 무역 |
- 중상주의와 제국 | |||
- 뉴잉글랜드 자치령 | |||
- 지속적인 무역 갈등 | |||
2.5 | 아메리카 원주민과 유럽인 간의 상호작용 | 다양한 유럽 국가들과 아메리카 원주민 간의 상호작용 변화 과정을 설명 |
- 뉴잉글랜드에서의 갈등 |
- 버지니아에서의 갈등 | |||
- 스페인 통치와 푸에블로 반란 | |||
2.6 | 영국 식민지에서의 노예제 | 1. 노예제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라. | - 노동력 수요 |
2. 노예들이 노예제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설명하라. | - 노예 제도 | ||
2.7 | 식민지 사회와 문화 | 1. 대서양을 통한 사람과 사상의 이동이 미국 문화 발전에 기여한 방식 설명. | - 인구 성장 |
2. 유럽 지도자들과 식민지 주민들의 목표와 이익 차이로 인한 자아 인식과 영국과의 관계 설명. |
- 식민지 사회의 구조 | ||
- 대각성 운동 | |||
- 문화 생활 | |||
- 계몽주의 | |||
- 영국과의 관계 | |||
- 정치와 정부 | |||
2.8 | 제2시기의 비교 | 북미의 다양한 지역에서 식민지 사회 발전의 결과를 비교하라. | - 비교에 대한 질문 |
- 역사가처럼 생각하기 |
주제 2.5: 아메리카 인디언과 유럽인 간의 상호작용
메이플라워 호 이후의 변화
메이플라워 호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지 56년이 지난 시점, 초기 순례자들의 자녀들은 단순히 생존을 넘어 포카노켓 부족을 물리치고 아메리카 대륙의 땅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체계적인 정착 활동을 펼쳤다. 그들은 본토의 가치와 신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들만의 체제를 만들어가고자 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원주민과의 갈등을 야기했다. 나다니엘 필브릭의 저서 메이플라워: 용기, 공동체, 전쟁 이야기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복잡한 상호작용과 갈등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학습 목표
유럽 국가들과 아메리카 인디언 간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역사적 통찰을 제공한다. 초기에는 상호 이해와 협력이 강조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갈등과 전쟁으로 변질되었다. 각 유럽 국가들은 아메리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원주민을 동맹이나 적으로 활용했다.
유럽인과 아메리카 인디언의 관계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유럽인에게 때로는 적으로, 때로는 전략적 동맹으로 여겨졌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인디언을 노동력으로 착취하거나 그들의 땅을 점령하려 했다. 그러나 같은 유럽 세력이나 다른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과의 분쟁에서 아메리카 인디언은 잠재적인 동맹국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1626년, 뉴욕 남부에서 마히칸 인디언은 네덜란드 정착민과 동맹을 맺어 모호크 부족에 대항했다. 이러한 사례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유럽인과의 관계를 자신의 생존 전략에 맞게 조정했음을 보여준다.
뉴잉글랜드에서의 갈등
뉴잉글랜드 연방의 결성
1640년대, 뉴잉글랜드 지역은 아메리카 인디언, 네덜란드, 프랑스의 지속적인 위협에 직면했다. 영국 본토의 내전으로 인해 식민지 주민들은 영국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고, 스스로 방어 체계를 구축해야 했다.
1643년, 플리머스, 매사추세츠 베이, 코네티컷, 뉴헤이븐 등 네 개의 식민지가 뉴잉글랜드 연방이라는 군사 동맹을 결성했다. 이 연합은 각 식민지에서 파견된 대표들로 구성된 이사회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국경 분쟁, 도망친 하인의 반환, 아메리카 인디언과의 거래를 다루었다.
연방은 40년 동안 존속했으며, 1684년 영국 군주의 통제가 강화되면서 해체되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는 식민지들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통합적인 조치를 취한 중요한 선례로 남았다.
메타콤의 전쟁(필립 왕의 전쟁)
뉴잉글랜드 연방이 해체되기 몇 년 전, 메타콤의 전쟁이 발생했다. 이 전쟁은 왐파노아그의 족장 메타콤(식민지 주민들에게는 필립 왕으로 알려짐)이 영국 정착민에 맞서 부족들을 연합시켜 일으킨 전쟁이었다.
1675년부터 1676년까지 이어진 이 전쟁은 뉴잉글랜드 식민지의 여러 마을을 파괴하고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결국, 영국 식민지군과 동맹을 맺은 모헤건 부족과 페쿼트 부족의 도움으로 메타콤은 패배했고, 이는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아메리카 인디언의 저항을 거의 종식시켰다.
버지니아에서의 갈등
버클리와 베이컨의 갈등
버지니아의 왕실 총독 윌리엄 버클리 경은 대규모 농장주를 대변하며 권력을 행사했으나, 서부 개척지의 소규모 농부들의 불만을 방치했다. 인디언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농부들은 버클리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져갔다.
1676년, 나다니엘 베이컨이 이러한 불만을 조직화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자원군을 모아 인디언 마을에 대한 일련의 습격을 감행했으며, 심지어 제임스타운을 불태우기까지 했다. 베이컨의 죽음 이후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이 사건은 식민지의 계급 갈등과 국경 분쟁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스페인과 푸에블로 반란
스페인의 아메리카 통치 정책은 엔코미엔다 제도를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의 노동을 착취하는 데 기반했다. 또한, 로마 가톨릭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강압적인 종교 정책을 펼쳤다.
1680년, 이러한 억압에 반발하여 푸에블로 반란이 발생했다. 다양한 푸에블로 부족들이 연합하여 스페인 정착민을 몰아냈다. 스페인은 1692년에 다시 이 지역을 점령했지만, 반란 이후 원주민들에게 더 유화적인 정책을 펼쳤다.
결론
유럽인과 아메리카 인디언 간의 관계는 단순히 정복과 저항의 구도로만 설명할 수 없다. 이는 동맹과 갈등, 협력과 배신이 교차하는 복잡한 상호작용의 역사다. 이러한 역사는 이후 식민지의 정치, 경제,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